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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석 위에 세우시는 부활의 주님 시편 40:1~3

반석 위에 세우시는 부활의 주님
  

▒▒▒ 성경 : 시편 40:1~3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사건은 인류 전체에게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마리아를 비롯한 여인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을 떠나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부활하시기 전과 부활하신 후의 예수님의 모습은 분명히 다릅니다. 부활하시기 전, 예수님은 공간 즉 장소와 시간 즉 때에 묶여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후, 예수님은 장소와 시간을 뛰어넘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함께 제자들은 문을 굳게 잠그고 숨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굳게 닫힌그 다락방 문을 너머 들어오셨습니다. 굳게 닫혀진 그 문을 통해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부활의 주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역사하십니다.

오늘 시편 40편 2절에서 “그가 우리를 기가 막힌 웅덩이와 수렁에서 건져내사 우리를 반석 위에 굳건히 세워주시고 대로 위에 걷게 하신다.” 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편시인의 고백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실족지 않게 하시며 졸지도 않으시며 우리의 발걸음을 지켜 주시는 분이십니다. 웅덩이는 음푹 패어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웅덩이에 빠지게 되면 그곳에 갇히게 됩니다. 좁은 공간이어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오늘 그런 웅덩이에서 우리를 건져내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제자들은 겁이 나서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어디론가 숨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문을 굳게 닫아 빗장을 걸었습니다. 그들 스스로 웅덩이에 빠진 사람들처럼 갇혀 지냈습니다. 살아도 사는 것처럼 살지 못하였습니다. 빛에 거하지 못하고 어둠 속에 숨을 죽이면서 살았습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자 그들은 더 이상 어둠에 머물 필요가 없었습니다. 더 이상 갇혀 지내지 않았습니다. 굳게 닫아 두었던 문을 활짝 열고 단절했던 세상을 향해 당당하게 나아갔습니다.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삶도 변화시킵니다. 갇혀있는 삶에서 벗어나 대로에서 복음을 전하는 삶으로 우리를 나아가게 합니다. 1884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들은 우리나라를 어두움이 짙게 깔린 땅으로 묘사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을 고집불통의 민족이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는 달라졌습니다. 또한 우리 민족도 달라졌습니다. 복음이 들어온 지 120년밖에 안된 이 나라가 선교사를 세계에서 두 번째로 파송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누가 이것을 가능하게 했을까요? 그것은 바로 부활하신 주님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감옥에 있을 때 감옥에서 끌어내서 복음을 전하게 하신 분도 부활하신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빌립보 감옥에 갇혀있는 바울과 실라를 끌어내서 복음을 전하게 하신 분도 부활하신 예수님입니다. 때로 우리의 생각과 여건들이 우리를 갇혀 살게 합니다. 우리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드는 일들도 있습니다. 여러분, 부활하신 주님의 손을 잡고 웅덩이에서 벗어나서 대로 위에 서는 역사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은 깊은 수렁에서 우리를 끌어내서 반석 위에 서게 하신다. 말씀합니다. 수렁은 웅덩이의 끝부분입니다. 웅덩이의 밑바닥이 수렁입니다. 그 수렁에는 물이 있습니다. 그래서 걸으면 걸을수록 우리를 깊게 빠져들게 합니다. 엠마오는 예루살렘의 서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서쪽은 해가 지는 쪽입니다.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내려가던 제자들의 삶은 수렁으로 빠져드는 삶이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예수님의 빛으로부터 서쪽으로 멀어져 갔습니다. 그곳에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과 말씀을 나누는 사이에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저녁때가 되어 식사를 하면서 그들의 어두웠던 눈이 밝아졌습니다. 비로소 앞에 계신 분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서쪽 엠마오로 향하던 그 길에서 돌아서서 해가 뜨는 동쪽 예루살렘으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수렁에서 반석으로 자리를 옮기는 귀한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에서 7장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산상수훈입니다. 산상수훈의 결론은 마태복음 7장 24절에서 27절에 해당합니다. 이 본문은 반석위에 집을 짓는 사람과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의 비유입니다. 우리 신앙의 기초를 어디에 두고 그것을 쌓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삶이 결정됩니다.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은 그 기초를 모래 위에 두는 사람입니다. 반면 반석위에 집을 짓는 사람은 그 기초를 반석위에 두는 사람입니다. 여기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초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기초는 부활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기초로 삼을 때 우리의 삶은 흔들리지 않는 반석과 같습니다.

우리의 삶의 기초를 하나님께 둔다면 본문의 3절의 찬양과 같이 “우리 입술에 찬양을 하나님께서 주셨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 이후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시신에 향료를 바르기 위해서 예수님의 무덤을 찾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님의 무덤은 비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보이지 않자,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 곁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리아는 마리아야 하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예수님의 음성에 마리아는 랍오니여 라고 대답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슬픔에서 기쁨으로 나아가게 했습니다. 마가복음 14장에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면서도 찬미하십니다. 고난을 앞두고도 찬미할 수 있었던 것은 고난 후에 영광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죽음 너머의 부활을 보셨습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예수님을 믿는 우리의 삶이 웅덩이에 갇혀있는 삶과 같을 때가 있습니다. 수렁과 같이 밑바닥을 칠 때도 있습니다. 사면초가와 같은 상황에 처할 때도 있습니다. 그때 부활의 주님이 먼저 우리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어 주십니다. 그리고 그 주님이 우리를 웅덩이에서 건져내시고, 깊은 수렁에서 건져내셔서 반석위에 서게 해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