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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강용규목사

칭찬받은 믿음

칭찬받은 믿음
  

▒▒▒ 마태복음 15:21~28


오늘 우리는 성서에서 수로보니게 여인을 만납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유대인이 아닌 이방여인입니다. 유대인은 조상 때부터 하나님을 믿어온 사람들이며,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대인을 칭찬하시지 않으시고 이방여인인 수로보니게 여인을 칭찬하십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입니다. 신앙인이라고 다 같은 신앙인이 아닐 것입니다. 기왕이면 여러분이 오늘 본문을 통해서 칭찬받는 믿음의 소유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방여인이 예수님께 나아온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에 장벽이 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은 상종하지 않는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이방여인인 수로보니게 여인이 유대인인 예수님께 거부를 무릅쓰고 나아왔습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여인이 칭찬받을 수 있었던 믿음의 중요한 요건은 그 앞에 있는 장벽을 넘어서서 예수님께 나아왔다는 사실입니다. 아브라함이 신앙을 갖게 된 것은 편안하고 안락한 갈대아 우르를 떠난 데서 시작됩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귀한 종으로 쓰임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애굽 궁정에서 40년 동안 왕자로 자라난 모든 편안함과 익숙함을 버려두고 광야로 나선 데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물과 배를 버려두는 결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칭찬받는 믿음은 우리가 주님께 나아가는 크고 작은 장벽을 뛰어넘는 데서 시작됩니다. 21세기 우리 장벽 중의 하나는 생각일 것입니다. 물질만능주의, 이성주의, 합리주의 이런 것들이 우리의 장벽이 됩니다. 이러한 장벽은 주님께로 나아가는 우리 길의 걸림돌이 됩니다. 여러분,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틀을 넘어서서 예수님의 생각으로 우리의 생각을 가져가고, 예수님의 생각에 우리의 생각을 맞추는 그런 귀한 결단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이방인의 장벽이 있었지만 그것을 넘어서서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외쳐댑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런데 이 여인이 예수님을 향해 아무리 외쳐대도 예수님은 아무 대답이 없으셨습니다. 여인의 부르짖음에 예수님은 침묵으로 대답하셨습니다. 때로 우리는 침묵에 대해서 이해가 되지 않아 실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기도의 제목을 놓고 몇 년 동안 기도해도 우리가 생각하고 기대하는 응답이 없을 때, 우리는 ‘정말 하나님은 내 기도를 듣고 계신가, 하나님은 나를 버리신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침묵은 하박국 선지자의 기도처럼 “내가 그렇게 부르짖어도 하나님은 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습니까?”라고 하나님을 향해 울부짖게 합니다. 침묵 중에 가장 큰 침묵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향한 하나님의 침묵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외쳐도 하나님은 아무 대답도 없으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은 침묵하신 것이 아닙니다. 몰트만 신학자의 말처럼 하나님께서 침묵하는 그 시간은 하나님이 우리의 고통을 안고 같이 고통당하는 그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뒷짐 지고 계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고통을 받으시며 아픔을 참고 계신 것입니다. 야곱이 형이 받을 축복을 가로챈 댓가로 고향인 브엘세바를 떠나 하란으로 떠나던 도중에 광야에 머물렀습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돌베개를 베고 누웠습니다. 고향을 떠나며 야곱은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곳에 그와 함께 계셨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이 칭찬받은 두 번째 이유는 예수님의 침묵을 단순한 침묵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의 침묵 앞에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계속해서 부르짖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침묵하고 계신다고 여기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서 침묵하고 계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일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믿음으로 끊임없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을 예수님은 칭찬하고 계십니다.

부르짖는 여인을 향해 예수님은 “자녀들에게 줄 떡을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않다.” 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여인을 거절한 이유는 너는 나에게 속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나와 너를 구분하고 ‘너는 나에게 속해 있지 않으니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에게 여인은 “주여, 옳소이다.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지 않습니까? 나는 예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가 없습니다.” 라고 말하며 예수님을 붙잡고 있습니다. 창세기 32장에서 야곱도 마찬가지입니다. 얍복강가에서 야곱은 하나님의 사자와 밤새도록 씨름합니다. 날이 새어 하나님의 사자가 떠나려하자 야곱은 “나를 축복하지 않고는 떠날 수가 없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이 상처받은 영혼, 이 무거운 짐진 나, 주님의 은혜 아니면 나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여인이 예수님을 붙잡은 것은 맹목적으로 붙잡은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붙잡고 말씀으로 예수님을 붙잡았습니다. 여인이 예수님을 붙잡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말씀에 근거해서 입니다. 목마름으로, 간절한 목마름으로, “나는 주님밖에 없습니다. 마음이 상한 자를 위로하시고, 치료하신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오늘 이 말씀을 붙잡고 주님을 붙잡습니다.”이런 마음으로 예수님께 나아갔을 때 “네 믿음이 크도다. 네 딸이 나음을 입을 것이다.”는 칭찬을 받고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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