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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강용규목사

진정한 기도

진정한 기도
  

▒▒▒ 누가복음 11:9~13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 시절 멜버른 수상이 캔터베리 대주교를 찾아가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였습니다. “주교님, 기도는 누구한테 하는 것입니까? 그리고 무엇을 기도해야 됩니까?” 누구에게 기도하느냐 그리고 무엇을 기도하느냐의 문제는 쉬운 듯 해 보이지만 결코 간단하지 않은 질문입니다. 누가복음 17장의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보더라도, 바리새인은 하나님을 향해 기도한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생각을 묻기보다 자기 자랑만 늘어놓았습니다. 반면 세리는 하나님을 향해 가슴을 치며 얼굴도 못 든 채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여러분, 기도가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것은, 하나님을 어려운 분으로 여겨 우리의 마음을 다 털어놓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서에서 우리가 구하기도 전에 우리의 필요를 다 아신다는 말씀에서 우리는 굳이 길게 기도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목사님 중의 한 분인 헬무트 틸리케 목사님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포로가 된 그는 먹을 것이 없을 때 하나님께 빵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에게 빵을 주셨습니다. 폭탄이 떨어지자 살려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를 살려 주셨습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서 그는 이런 고백을 합니다.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은 그때서야 비로소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기도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이며, 올바른 관계 속에서 연속되는 하나님과의 대화다.”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나와의 올바른 관계입니다. 올바른 관계 속에서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 바로 기도인 것입니다. 자신이 필요할 때 하나님을 찾고, 필요 없을 때 하나님을 멀리하는 그런 관계가 아닙니다. 목적을 위해 기도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일임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됩니다. 본문에서 “어떤 아들이 아버지한테 생선을 달라는데, 뱀을 줄 부모가 어디에 있으며, 어떤 자녀가 아버지한테 알을 달라는데, 전갈을 줄 부모가 어디 있느냐? 세상에 있는 부모가 악할지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합니다. 여기에 바로 멜버른 수상이 추기경한테 질문한 우리가 누구한테 기도하느냐에 대한 답이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늘 아버지께’ 하는 것입니다. 아들, 딸 즉 자녀로서 아버지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갖게 되고, 찾는 이마다 찾게 되고, 문을 두드리는 이마다 열리게 될 것이다.” 계속해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하나님 아버지는 항상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심을 알게 됩니다. 악한 부모일지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주는 것처럼, 하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자녀인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신명기 3장 25~26절은 모세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요단강을 건너가서 40년 동안 그리던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을 보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너는 다시는 이 일로 내게 구하지 말라.”며 단칼에 잘라 말씀합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생선을 달라고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생선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출애굽을 인도한 지도자의 기도를 하나님은 들어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간 사람은 모세가 아닌 여호수아와 갈렙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사실을 놓고 보면 여호수아와 갈렙이 모세보다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대화를 나누실 때 그곳에 나타난 사람은 여호수아와 갈렙이 아닌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도 못한 모세였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계명을 받기 위해 40일동안 기도하고 있을 때 산 밑에 있던 사람들은 우리를 지금까지 인도한 신이 어디 갔느냐며 모세를 찾았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신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생선을 달라고 했을 때 아무것도 주시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생선보다 더 존귀한 축복을 모세에게 내려주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어도 하나님은 우리한테 좋은 것 주시고,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아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세 번째로 중요한 것은 우리 기도의 마지막은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의 기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는 자칫 잘못 이해하면 마치 운명론자들이 드리는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아버지 뜻대로 되니까 그냥 운명에 맡기며 “아버지 뜻대로 모든 것 하십시오. 나는 가만히 있겠습니다.” 이런 식의 기도가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하는 그 말 속에는 내가 해야 될 일을 최선을 다해서 책임지는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난 후 모든 결과는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책임의식이 결여된 기도여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해야 될 것에 최선을 다하고 기도하면서 모든 결과를 하나님께 내어맡기는, “하나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그런 기도를 드려야 될 줄을 믿습니다. 우리의 삶에 파편이 많습니다. 여기저기 찢어지고 깨진 것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은 우리의 어리석은 기도, 못난 기도를 모두 하나님의 손으로 주무르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그리고 이웃에게 유익하도록 아름다운 결과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늘 우리의 마지막 기도는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 기도로 진정한 기도를 드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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