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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강용규목사

하나님과 가이사

하나님과 가이사
  

▒▒ 성경_ 누가복음 20:19~26



정치와 종교를 구분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리스의 유명한 극작가인 소포클레스의 작품 중에 “안티고네”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작품의 여자 주인공의 이름은 엘렉트라인데 그녀의 남동생이 왕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왕은 엘렉트라의 남동생을 죽인 후 죄인이라는 이유로 그를 땅에 묻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나 엘렉트라는 남동생의 시신을 거두어서 땅속에 매장합니다. 그러면서 “비록 쓰여진 법은 아니지만 영원한 법, 하늘의 법이 죽은 자를 존경하라고 했다.”고 말합니다. 엘렉트라는 우리 눈앞에 정치라는 실정법이 있지만 그 위에 하늘의 법이 있음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인기가 높아지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위협을 느끼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궁지에 몰아넣는 질문을 합니다. “세금을 바칠 때 하나님께 바쳐야 합니까? 가이사에게 바쳐야 합니까?” 둘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하는지 예수님의 대답을 간계한 마음으로 가지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데나리온 하나를 들고 그 은전에 그려진 그림이 누구이며, 그밑에 쓰여진 글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그 은전에는 가이사의 얼굴이 그려져 있고, 그 밑에 로마어로 로마황제라고 쓰여져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은전의 그림과 글씨에서 볼 수 있듯이 너희를 지배하고 있는 사람과 그 법이 바로 가이사이며, 가이사의 법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의 식민지에서 벗어나기를 원하고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실제의 생활에서 너희를 지배하고 있는 그 법은 로마의 법 즉 세상의 법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살고 있지만 우리의 실생활에서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그 법이 대한민국의 법인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우리가 그 법을 벗어나려도 해도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한 그 법의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것은 또한 가이사의 법을 따르는 것처럼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의 법을 얼마나 따르며 살고 있는가를 묻고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두 번째는 이것입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정말로 명답입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도대체 이런 대답이 어디 있습니까? 이 대답을 언뜻 들으면 원론적인 대답으로만 여겨져서 구체적인 대답을 원하는 우리는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원론적인 대답처럼 보이는 이 대답이야말로 바로 구체적인 대답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예배를 보십시다. 우리의 예배에는 형식이 있습니다. 그 형식에 따라서 매 주일 예배를 드리다보니 우리는 어느새 예배가 예배가 아닌 습관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예배 순서가 이같이 만들어지기까지는 2천년의 기독교 역사가 있습니다. 역사와 함께 어떻게 하면 가장 예배다운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 고심하면서 만든 이 예배가 오늘 우리에게는 그저 하나의 순서처럼 되어버린 것은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높이는 이 예배가 습관을 따라 드려져서는 안되겠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는 그 안에 마음이 들어있어야 하고, 생각이 들어가 있어야 하고, 하나님의 윤리에 맞는 행동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장을 보면 애굽 왕 바로는 히브리인 중에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모두 죽이라고 히브리 산파에게 명령합니다. 그런데 히브리 산파인 십브라와 부아는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이가 출산했는데도 살려주었습니다. 두 산파가 이렇게 한 데는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성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히브리 여인이 남자 아이를 낳으면 죽이는 것 그것이 가이사의 법이라면, 두 여인은 실정법 앞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가이사의 법을 따르지 않고 그 아이를 살려주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사람이 죽이지 못한다고 하는 분명한 윤리의식이 그들에게 있었습니다. 예수님 돌아가시기 전에 마리아가 옥합을 깨뜨려서 발아래 부을 때 가룟 유다는 “그렇게 비싼 것을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않고 왜 허비하느냐”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가만히 두어라. 저가 나의 장례를 위해서 행한 일이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습관적 또는 형식적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마음을 담고, 열정을 담고, 분명한 윤리의식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진리를 찾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진리는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느 것이 하나님의 것이고, 어느 것이 가이사의 것이냐를 조금만 찾는다면 우리는 그 진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진리는 찾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숨겨진 것은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하나님의 숨겨둔 그 비밀을 찾는 자에게 그 비밀은 드러나게 됩니다. 숨겨진 하나님을 발견하면서 찬양하고 예배드릴 때 거기에서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우리에게는 축복으로 임하실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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