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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8:1-9 자연, 생명의 정원 2013.4.13(일)

8:1-9 2013.4.13()

자연, 생명의 정원

드디어 봄다운 봄이 시작되었습니다. 봄은 이미 3월에 시작되었지만 부활절이 지나야 진짜 봄입니다. 오늘은 봄을 재촉하는 봄비가 촉촉이 내리고 있습니다. 봄이 오면 제가 좋아하는 시가 있습니다. 도종환의 다시 오는 봄입니다. “햇빛이 너무 맑아 눈물납니다. 살아 있구나 느끼니 눈물납니다. 기러기떼 열지어 북으로 가고, 길섶에 풀들도 돌아오는데 당신은 가고 그리움만 남아서가 아닙니다. 이렇게 살아 있구나 생각하니 눈물납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도 봄을 좋아 합니까? 마지막 구절이 가장 좋습니다. “이렇게 살아 있구나 생각하니 눈물납니다”. 시인은 봄이 와서 좋은 것은 , 내가 살아 있구나하고 느끼는 느낌이라는 것입니다. 계절의 봄뿐만 아닙니다. 인생의 봄도 마찬가지입니다. “, 내가 살아 있구나라고 느낄 때 그것이 바로 인생의 봄입니다.

 

지난 금요일에는 목회자들과 함께 자연속으로 갔습니다. 일상의 분주함 때문에 자연의 아름다움을 잊고 살아 왔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뒤로 하고 하루 쉬기 위해 자으로 나갔습니다. 충청도 서산에서 봄의 향내를 마음껏 맡고 왔습니다. 아름다운 꽃, 우는 새, 움트는 생명(사진), 그 자연속에서 저는 제가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연안에 살아 있는 우주의 생명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우리가 사는 세상을 아름다운 창조의 세계로 회복할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우리가 사는 지구를 행복한 에덴으로 회복하여 우리가 이 땅에 살아 있슴에 감사하며 살 수 있을까? 8편은 그를 위한 성경적 처방을 제시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창조를 믿어야 합니다.

세상의 회복의 첫 번째는 세상을 누가 창조했는가를 아는 것입니다. 3절을 보실까요? 8:3,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창조주가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그가 세상을 지으셨고 그가 세상을 다스립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하나님의 창조를 주의 손가락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손가락을 아십니까? 손가락이 얼마나 작습니까? 그 작고 보잘 것 없는 존재가 세상을 창조했다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작은 손가락 하나가 우주를 창조했다”. 그것은 능력을 말합니다. “작은 손가락이 세상을 지었다”. 섬세함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손가락으로 우주를 능력과 섬세함으로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손가락”(finger of God, 에츠바 엘로힘)은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바로의 압제에서 건져낼 때 그의 손가락으로 건져냈다고 말합니다. 8:19절 말씀이다. “술객이 바로에게 고하되 이는 하나님의 손가락이니이다”. 우리말로 이 말씀은 술객이 바로에게 고하되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나오는 권능은 본래 하나님의 손가락”(에츠바 엘로힘)입니다. 애굽에서 그 백성을 바로의 손에서 구해낸 열 가지 재앙은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말미암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가락은 구원의 능력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손가락은 또한 십계명의 말씀을 손수 쓰신 손가락입니다. 31:18, “이는 돌판이요 하나님이 그 손가락으로 쓰신 것이라”. 영화 십계에 의하면 십계명의 말씀은 불로 새겨집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이 손가락으로 쓰셨다고 말합니다. 왜 손가락으로 쓰십니까? 귀하고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백성에게 주시는 그 분 자신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손가락은 모두 열 개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손가락은 하나님의 열 가지 일과 관련됩니다. 열 가지 재앙을 내리고 열 가지 계명을 기록합니다. 모든 저주와 축복이 하나님의 손가락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의 손가락이 신약으로 가면 예수님이 행하신 권능의 손가락으로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능력을 행할 때는 손가락을 사용합니다. 당시 사람들 가운데 예수님을 귀신들렸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에 대하여 예수님은 자신은 귀신들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때 하신 말씀이 이렇습니다. 11:20,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좇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여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손이 곧 하나님의 손가락”(다크투로이 데오)입니다. 사단에게 붙잡혀 벙어리된 자를 예수님은 손가락으로 치료하십니다. 실로암 못에서 장님을 고치실 때에도 손가락을 사용합니다(9:6), 사단에게 붙잡혀 있는 귀신들린 사람을 고치실 때도 손가락을 사용합니다(12:28). 3절 다시 보십시오. 8:3, “주의 손가락으로 지으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왜 하필 손가락입니까? 손가락은 팔뚝이 아닙니다. 팔뚝은 근육과 힘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손가락은 작고 보잘 것이 없습니다. 어떤 목수가 손가락 하나로 집을 짓겠습니까? 어떤 도공이 손가락 하나로 도자기를 빚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손가락 하나로 하늘의 달과 별을 지으시고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권능의 하나님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창조를 믿습니까? 우리 모두 자라면서 진화론에 대하여 듣습니다. 교회 다니는 학생들은 학교다니면서 한번쯤은 혼란을 겪습니다. 교회오면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하고 학교에 가면 진화되었다고 합니다. 어릴 때 동물원에 가면 원숭이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 저 원숭이가 우리 조상인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진화론은 과학계에서 무너지고 있습니다. 진화론의 가장 큰 전제는 이것입니다. “존재의 시작에 원인이 없다. 우주는 스스로 시작되었다. 우주는 누군가에 의해 창조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겨났고 스스로 발전해 왔다. 모든 존재는 한 뿌리에서 나와 오랜 세월 서서히 진화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대 전제가 있습니다. “인간은 물질적인 존재다”.

 

그런데 질문이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 있는 세포가 스스로 생겨날 수 있는가? 어떻게 무생물과 생물 사이의 간격이 스스로 메워질 수 있는가? 인간이 다만 물질뿐이라면 인간의 영혼, 사후 세계는 무엇인가? 인간이 다만 육체와 뇌로 되어 있다면 인간의 의식, 윤리, 양심, 영성은 어디서 오는가? 인간이 다만 육체뿐이라면 인간의 존재 목적과 사명은 무엇인가? 그러면서 과학의 발달로 그동안 진화의 증거로 여겨져왔던 것들이 잘못 해석되었다는 것도 밝혀졌습니다. 예를 들면 시조새가 있습니다. 이 시조새는 진화론자에 의해 파충류에서 조류로 진화되는 중간단계로 믿어졌습니다. 그런데 최근의 연구는 시조새는 파충류와 새의 중간이 아니라 완벽한 새임이 밝혀 졌습니다. 깃털이 달린 새입니다. 그리고 똑같은 화석이 또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자바원인이 있습니다. 진화론자들은 원숭이를 닮은 이 사람이 원숭이에서 인간으로 진화하는 중간단계의 인간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닙니다. 자바원인은 원숭이가 아니라 그 자체로 완전한 인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의 추세는 제대로 과학하는 사람들이라면 진화론을 잘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사실 과학과 믿음의 기능은 하나입니다. 과학은 하나님을 증명하고 믿음은 하나님을 증거합니다. 과학은 하나님의 활동을 말하고 믿음은 하나님의 존재를 말합니다. 과학은 천체의 세계를 말하고 믿음은 천상의 세계를 말합니다. 과학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말하고 믿음은 그 하나님앞에 내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를 말합니다. 그래서 과학은 믿음과 함께 하나님의 존재와 창조를 믿게 합니다.

 

언제나 T.V를 통해 장수거북이의 생태를 본 적이 있습니다(사진). 몸무게가 거의 일톤에 가깝고 나이가 아마 100살이 넘었을 거북이가 알을 낳으려고 해변가로 올라옵니다.거북이는 모래가 있는 백사장에 도착하자 억센 지느러미발을 한번에 하나씩 써서 모래를 퍼내 뒤로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한참을 파 일 미터쯤 팟을 때 거북이의 몸이 모래 속으로 완전히 잠겼습니다. 사방을 두리번 거린 거북이는 그 속으로 들어가더니 알을 낳기 시작합니다. 알은 당구공만 했고 색깔은 흰색이었으며 수는 한 60개 되어 보였습니다. 그러더니 마지막 알 몇 개를 더 낳았는 데 그것은 처음 것보다 작았습니다. 설명에 의하면 거북이는 혹시 적에게 알이 발견될 때 먹으라고 무정란 몇 개를 더 낳아 위에 놓는다는 것입니다. 알을 다 낳은 거북이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바다 쪽으로 들어갑니다. 마침 달빛에 거품에 반짝이자 파도가 일었고 거북이는 능숙하게 몸을 숙여 물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얼마루 모래를 뚫고 아기거북이가 태어나면 거북이들은 아무에게도 묻지 않고 자동적으로 바다쪽으로 기어갑니다. 그 중에 일부의 알은 코요테, 너구리, 갈매기의 습격을 받아 죽지만 살아 남은 알들은 부화하여 새끼거북이가 되어 바다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먼 훗날 거북이는 또 자기 새끼를 낳기 위해 백사장으로 올라옵니다. T.V를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누가 거북이가 알을 낳을 때 바닷가 백사장으로 올라가라고 말해 주었을까? 누가 백사장에 도착하면 온 몸으로 흙을 파고 그 속으로 들어가라고 가르쳤을까? 누가 새끼를 보호하기위해 무정란 몇 개를 더 낳아 위에다 얹어 놓으라고 말했을까? 누가 새끼를 낳으면 바다속으로 다시 들어가라고 말했을까? 어린 새끼는 태어나자 마자 왜 산으로 가지 않고 바다로 갈까? 왜 거북이는 바다에서 해파리만 먹을까? 누가 가르쳤을까?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입니다. 102:25, “주께서 옛적에 땅의 기초를 두셨사오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니이다”. 그나마 유일한 창조주입니다. 4:35,“이것을 네게 나타내심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오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네게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삶의 목적을 주셨습니다. 1:16,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25:8,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아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하나님이 세상과 나를 창조하셨습니다.

 

둘째. 우리는 자연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했다면 우리가 할 일은 그 세상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3절부터 다시 보시겠습니까? 8:3-8.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 아래 두셨으니 곧 모든 우양과 들짐승이며”. 여기에서 다윗이 말합니다. “사람이 무엇이관대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에 인간이 할 일이 무엇일까?

 

많은 사람이 오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창1:28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여기에 정복하라”, “다스리라는 말이 나옵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를 하나님이 용인하신 것으로 받아 들였습니다. 소위 무분별한 개발과 식민지 정복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 말의 본래 뜻은 글자 그대로 정복하고 다스리고 발로 밟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가꾸고 돌보라는 것입니다. 마치 어떤 사람이 정원을 만들고 정원사를 채용하면서 이 정원을 잘 돌보고 가꾸라고 말한 것과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정원주요 우리는 정원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과 우주의 정원을 훼손할 권리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잘 돌보고 가꿀 책임만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것들을 우리에게 세 가지로 맡기셨습니다. 첫째 다스리라. 땅에 대한 지배권을 주셨습니다. 둘째 나를 대신하여. 땅에 대한 지배권은 하나님의 통치의 협력적 차원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셋째 따라서 그 지배는 위임된 것이며 책임이 따릅니다.

 

왜 아름다운 자연이 파괴되어 갑니까? 왜 이 세상이 그토록 위험해 지고 있습니까? 세계는 이미 핵전쟁보다 더 위험한 환경의 파괴로 심각한 위협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1986년에는 러시아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방사능이 새어나와 유럽을 불안에 떨게 했습니다. 작년 3월에 있었던 일본의 쓰나미를 기억하시나요? 진도9.0의 대지진이 일본 후쿠시마, 미야기, 센다이지역에서 일어나 사망자, 실종자만 1만명이 생겼습니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에 노출된 방사능은 온 일본 열도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습니다. 거대하게 밀려오는 쓰나미의 물결을 기억하시나요?(영상) 그 거대한 물결앞에 인간은 지극히 작은 존재였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이 왜 이렇게 공포의 현장이 되었을까요? 신학자 존 스토트에 의하면 우리는 현재 네 가지 환경적 문제앞에 직면했다고 합니다. 첫째는 인구문제입니다. 1900년대의 지구 인구는 20억이었습니다. 1974년에 그것이 두 배가 되었고 2015년이 되면 그것이 또 두 배, 80억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많은 인구를 어떻게 먹여야 하나? 이것이 첫 번째 환경 문제입니다. 두 번째는 자원 고갈의 문제입니다. 현재 지구상에 사는 생물의 종류는 약 일천만 정도로 봅니다. 문제는 그것이 갈수록 멸종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매일 평균 20종에서 50종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셋째는 쓰레기의 문제입니다. 인구 증가와 과소비로 쓰레기는 늘어갑니다. 아무리 재사용하고, 소각하려고 해도 어찌할 수 없습니다. 쓰레기는 지구의 골칫거리입니다.

 

마지막이 지구의 온난화입니다. 지구는 지금 과도한 메탄가스, 탄산가스의 방출로 지구 표면의 온도를 상승시켜 오존층이 파괴되고 자외선에 노출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한 엘리뇨, 지진, 해일, 쓰나미가 생겨 지구는 온통 몸살을 알고 있습니다. 지구의 온난화로 사막은 지난 100년간, 150퍼센트 증가했습니다. 현재 지구 표면의 50퍼센트가 사막입니다. 이스라엘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인 데 사해는 한 20년 지나면 자취를 감출 것이라고 합니다. 정글과 나무, 얼음은 사라지고 대신 사막과 아열대성 기후, 해수면의 높이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세계는 지금 로마서에서 바울이 탄식한대로 탄식하고 있습니다. 8: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왜 세상이 이렇게 탄식하고 있습니까? 하나님때문이 아닙니다. 인간 때문입니다. 인간이 자기 자리에서 하나님 만드신 자연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처럼 굴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3절 보세요.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도대체 인간이 무엇입니까? 여기에 나오는 인간을 히브리어로 에노쉬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 말의 뜻이 중요합니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 “아나쉬라는 동사에서 왔는 데 이 말은 약하다. 앓다라는 뜻입니다. 인간은 약하고 툭하면 아픈 존재입니다. 인간은 결코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맡기긴 했지만 전능자로서 맡긴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에노쉬”, 약하고 병들어 언젠가 죽을 존재입니다. 그래서 그가 맡은 자연은 그가 부리는 신하가 아니라 그가 사랑하는 형제요 자매입니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함부로 대하고 정복하고 부려서는 안됩니다.

 

똑같이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인 인간이 다른 생명을 착취하고 지배해서는 안됩니다. 나무도 함부로 베서는 안됩니다. 전 세계 지금 통계적으로 나무 한 그루 심을 때마다 나무 열 그루를 베어냅니다. 그 결과 전 세계의 삼림중 11퍼센트가 황폐화되었습니다. 그 크기가 무려 중국과 인도를 합친 크기입니다. 나무를 베지 말아야 합니다. 휴지, 쓰레기를 줄여야 합니다. 몇 년전 독일 총리가 신라호텔에 머물다 갔는 데 아침에 청소하던 직원이 깜짝 놀랐습니다. 딱 휴지를 한 장 썻습니다. 그나마 4분의 1로 접어 네 번을 썻습니다. 이러니까 독일이 되는 것입니다.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려서도 안됩니다. 계곡이나 하천에서 놀았으면 깨끗이 치워야 합니다. 빈 병, 휴지 함부로 버려서는 안됩니다. 일제 시대에 살았던 이세종 선생은 너무 자연을 사랑했습니다. 한번은 길을 지나가다가 고사리를 발로 밟았습니다. 밟힌 부분에서 연한 물이 흐르자 이세종은 무릎을 꿇고 울었습니다. 고사리의 피를 흘리게 했다는 것입니다. 한번은 부엌 구정물에 쥐가 빠졌습니다. 못 나오고 허우적 거리자 나무로 사다리를 만들어 쥐가 나가게 했습니다.

 

자연을 형제로 여겨야 합니다. 자연이 우리의 형제임을 알게 해준 사람이 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입니다. 그가 누어 있는 이태리 아시시 프란치스코 성당에 가면 전면에 새에게 설교하는 프란치스코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사진). 그에게 모든 만물은 사랑스러운 형제요 자매였습니다. 프란치스코가 얼마나 생명들을 사랑했는지 유명한 늑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가 수비오 마을에 머무르고 있을 때 아주 광포하고 사나운 늑대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이 늑대는 짐승을 해칠 뿐 아니라 사람까지도 잡아먹곤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밖으로 나갈 때는 마치 전쟁에 나가는 사람처럼 무기를 가지고 다녀야 했습니다. 프란시스코가 이 말을 들을 때 갑자기 늑대가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늑대를 만나려고 길을 떠났습니다. 사람들이 말렸지만 프라치스코의 마음을 바꾸지 못했습니다. 그때 마침 늑대가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은 높은 곳으로 도망쳤고 사나운 늑대는 입을 크게 벌린 채 프란시스코와 그 제자들을 향해 달려들었습니다. 이때 프란시스코는 십자가를 들어 늑대에게 보였습니다. 순간 늑대는 온순해지고 사나운 입은 닫았습니다. 프란시스코는 늑대를 부르며 말했습니다. “늑대야, 내게로 오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나와 누구도 해치지 말라.” 그때 늑대가 몸과 꼬리와 귀를 움직여 끄덕였습니다. 프란시스코가 맹세를 받기 위해 손을 내밀었을 때 늑대도 그 앞발을 프란시스코의 손에 올려 놓았습니다. 사람들은 몰려 들었고 숨을 죽이며 이 광경을 보고 있었습니다. 이때 프란시스코가 말했습니다. “형제 늑대여, 너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한다. 지금 주님의 이름으로 평화의 계약을 맺자.” 늑대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는 사람을 해치지 않겠다고 약속을 맺었습니다. 그렇게 늑대는 2년을 살면서 누구도 해치지 않았고 평화롭게 살았습니다. 늑대가 눅자 사람들은 불쌍히 여기며 늑대를 묻어 주었습니다. 이것은 이사야서에 메시아가 오면 늑대와 어린양이 함께 평화로운 나라를 이루게 될 것이라는 성경적 이상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천국에는 동물학대가 없습니다. 천국에서는 벌목, 자연파괴, 무분별한 개발, , 군비확창 없습니다. 늑대와 어린양이 함께 삽니다. 우리가 사랑해야 할 자연의 명단이 보이시나요? 7, “곧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 곧 모든 생명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생명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해야 합니다.

자연에 대한 우리의 마지막 태도는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9절입니다. 8:9, “여호아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1절에도 나옵니다. 8:1, “여호아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자연을 보는 세 가지 입장이 있습니다. 자연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시인, 문학가, 화가, 자연주의자, 생태학자, 식물학자, 동물학자, 수의사, 환경보호론자, 그들은 자연 자체를 사랑합니다. 자연을 신으로 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상숭배, 정령숭배, 토테미즘, 기암괴석, 나무, 서낭당, 제주 용두암같이 기이한 자연을 신으로 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 번째가 있는 데 자연을 지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입니다. 성경적 입장입니다. 성경은 자연이 아무리 아름답고 대단해도 자연 자체를 우상화하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일 뿐 입니다.

 

5세기의 성자 어거스틴이 아름다운 자연을 보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의 참회록에 이렇게 썻습니다, “하나님, 눈부시게 아름다운 분, 저는 당신은 너무 늦게 사랑했습니다, , 하나님, 그토록 오랫동안 계시되 늘 새롭고 아름다우신 분, 당신을 사랑합니다”. 인류 최초로 우주 여행을 했던 사람은 소련의 가가린 중령이었습니다.그가 비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사람들이 물었습니다.“당신은 우주에서 하나님을 보았습니까?” 그가 말했습니다.“거기에 하나님은 없었습니다”.같은 우주여행을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미국의 암스토롱이었습니다.땅에 돌아와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 그가 대답했습니다. “내가 우주공간에 있었을 때 거기서 나는 충만하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우주만 보지 말고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성 프란치스코도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가 1224년 라베르나 산에서 오상을 체험한 뒤 태양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보니까 태양도 아름답고 달도 아름답습니다. 태양은 형님이요 달은 누님이요, 구름과 물과 불은 아우였습니다. 그래서 찬송가 69장이 나왔습니다. “온 천하 만물 우러러. 다 주를 찬양하여라. 할렐루야. 할렐루야. 저 금빛나는 밝은 해, 저 은빛나는 밝은 달, 하나님을 찬양하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결국 그는 죽을 때 죽음마저도 자기 자매로 삼았습니다. “자매 죽임이여 어서 오라”. 그리고 자기의 몸을 벌겨벗겨 대지위에 누이라고 말했습니다. 대지는 그의 어머니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는 어머니 품에 안긴 아이처럼 평온하게 하나님께 돌아갔습니다.

여러분,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연을 지으신 하나님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아십니까? 19: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하늘이 아름다운 것은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아십니까? 궁창이 아름다운 것은 궁창이 하나님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기 때문이라는 것을 아십니까? 우주는 들리는 소리는 없으나 하나님의 소리를 말하고 자연은 보이는 것은 없으나 하나님의 아름다운 영광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여호아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찬양).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찬양). 아름다운 자연, 하나님의 생명과 영광이 가득한 곳, 이 봄에 자연과 함께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8:1-9 2013.4.13()

자연, 생명의 정원

도종환의, “다시 오는 봄

 

햇빛이 너무 맑아 눈물납니다.

살아 있구나 느끼니 눈물납니다.

기러기떼 열지어 북으로 가고, 길섶에 풀들도 돌아오는데

당신은 가고 그리움만 남아서가 아닙니다.

이렇게 살아 있구나 생각하니 눈물납니다”.

 

 

아름다운 자연(사진)

 

먼저 하나님의 창조를 믿어야 합니다.

8:3,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8:19, “술객이 바로에게 고하되 이는 하나님의 손가락이니이다”.

31:18, “이는 돌판이요 하나님이 그 손가락으로 쓰신 것이라”.

11:20,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좇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진화론의 전제

존재의 시작에 원인이 없다. 우주는 스스로 생겨났고 스스로 발전해 왔다. 인간은 물질적인 존재다”.

 

장수거북이(사진).

102:25, “주께서 옛적에 땅의 기초를 두셨사오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니이다”.

4:35,“이것을 네게 나타내심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오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네게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1:16,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25:8,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아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둘째. 우리는 자연을 사랑해야 합니다.

8:3-8.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 아래 두셨으니 곧 모든 우양과 들짐승이며”.

1:28,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나님의 창조위임

(1) 땅에 대한 지배권을 주셨다.

(2) 하나님의 통치의 협력적 차원에서 주셨다.

(3) 지배는 위임된 것이며 책임이 따른다.

 

일본 쓰나미(영상)

 

존 스토트, 네 가지 환경 문제

(1) 인구증가의 문제

(2) 자원 고갈의 문제

(3) 쓰레기 문제

(4) 지구 온난화의 문제

 

 

인간=“에노쉬”=“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

 

새에게 설교하는 프란치스코의 모습(사진).

 

셋째.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해야 합니다.

8:9, “여호아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8:1, “여호아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자연을 보는 세 가지 입장

(1) 자연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

(2) 자연을 신으로 섬기는 사람

(3) 자연을 지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

 

찬송가 69, “온 세상 만물 우러러”(1절 악보)

 

19: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여호아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찬양).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찬양).